11.11
시어터2.0에서 [선택]을 보다.

서울극장에서 [러브 액츄얼리]를 본 후 열심히 강남으로 이동, 겨우 [선택]의 오프닝과 마주했다. 그 여는 장면에는 대금과 가야금 등 전통악기로 김선명의 삶을 축약적으로 선율에 옮긴 위무의 음악이 함께 했다. 관객은 첨엔 나포함 두 명, 나중에 보니 총 4명이었다.



<선택>으로 10년 만에 두 번째 상업영화를 선보인 홍기선 감독의 충무로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와 주연배우 김중기가 출연했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6)를 예전에 본적이 있다. 당시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통 관심이 없던(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이 영화들을 꽤나 어렵게, 그리고 지루하게 봤었다.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다룬 <선택>은 그러나 진정한 영화광이 되기 위해선 꼭 봐야할 것 같은 압박에 억지로 봤던 <가슴에…>와 <시간은…>와는 달리 재미있고 감동도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돌린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신문의 정치면을 읽지 않는다. 자랑은 아니지만 관심이 그쪽에 가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힘은 알아듣게 얘기하면서 본질은 건드리는 데에 있다. 그 누그러뜨린 화법에서 오래도록 사회에 불만을 갖고 변화를 꿈꿔온 감독의 지난 혈기를 읽게 만든다.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의 살인을 저지르고 온 청년처럼 피를 끓여왔을 감독은 지금 우리에게 노승처럼 다가와 사람 살아가는 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의지'와 '신념'에 대해 받아들이기 쉽게 말한다.



어찌나 우매한 나를 일깨우는지 티슈가 여러 장 희생되었다. 특별사면으로 나온 김선명을 만나 아흔 넷의 노모(老母)가 처음으로 던지는 한마디, "이놈아, 에미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 안 됐잖아." 내내 시냇물을 이루던 나의 눈물은 이 실제 자료화면 앞에서 비염의 콧물과 눈물이 섞여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스물 다섯 혈기방장한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 칠십이 되어 세상밖에 나와 북으로 간 김선명은 값싼 신념 앞에서도 쉬이 흔들리는 나에게 크나큰 교훈을 남겼다.  [★★★★★]  


   
※덧붙이기
1. 애초 <선택>에는 김선명 역의 조재현을 비롯 김갑수, 김규철, 유인촌 등이 내정되어 있었단다. 한편 영화 속엔 김중기가 출연했던 영화 <둘 하나 섹스>의 이지상 감독도 비전향장기수 중의 하나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바로 봤기를. 그를 발견하곤 의지와 신념으로 영화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2. 비전향 장기수의 삶은 다뤘다는 김하기의 소설 <완전한 만남>을 읽어봐야겠다. 마침 예전에 청계천 길거리서 5백원 주고 샀던 것이 책장에서 발견되었다.  





선택 (The Road Taken, 2003)  
2003년 10월 24일/ 15세 이상/ 103분 / 드라마/ 한국

감독  :  홍 기선
출연  :  김 중기(김선명), 안 석환(오태식), 최 일화(안학섭), 고 동업(종달이), 김 세영(남영만), 임 일찬(고상구), 김 종철(이영운)
각본  :  이 맹유
촬영  :  오 정옥
음악  :  최 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