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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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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립국
작성일 2001-06-23 (토)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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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The Dull-Ice Flower)]

내가 대학 두 해의 시린 가을동안 짝사랑했던 한 여자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참 좋아 했었다. 외로운 여가시간이면 그녀는 텅빈 도서실 한 귀퉁이에서 화집을 눈매하며 슬픈 눈 보이곤 했었고 그런 그녀를 나는 책장의 책틈 사이로 한없이 훔쳐보았었다. 그녀가 사라지고난 뒤 다시 펼쳐든 그때의 그림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였다. 이후 난 뭉크 다음으로 모딜리아니를 내 가슴에 품었고 오늘 호암겔러리에서 <어느 학생의 초상>에 묻어 새록 떠오르는 그녀 향수는 오로지 슬픈 모노톤뿐이다.

이젠 다른 사람을 위해 화장하는 그녀를 쉬이 찾아볼 순 없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사랑하는 그림은 이렇게 몇 푼의 돈과 걸음으로써 확인할 수 있기에, 슬프지만 기쁜 일이다. 지금 내가 느닷없이 짝사랑에 관한 단편을 펼쳐 보이며 그림 얘기를 하는 다름아닌 이유는 여기 한 소년의 삶 때문이다.

우린 기억한다. 우유배달을 하며 틈틈이 그림에 대한 열정을 토해내던, 흰 눈 하늘 가득한 날 죽어가는 몸 이끌고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자 했던, <플란다스의 개> 그 소년. 우린 그 소년에 대한 아련한 반추를 잃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린 기억의 한 틈을 또 비집고, 앞으로 여기 이 한명의 소년을 더 받아들여야할 의무를 가진다. 학교대신 돈버는 일이 더 절절하지만 맑은 심성으로 꿋꿋이 그림그리던 고아명이라는 이 소년에 대한. 아명의 아버지 말대로 그림을 그리면 쌀이 나오는 것도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아명은 무엇이든 도화지에 담기를 좋아한다. 놀이에서 익혀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그 누구보다 창작정신이 뛰어난 그지만 이장아들 임지홍앞에선 매번 꺾이고 만다. 임지홍은 제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받은 것만 화폭에 담을 준 안다. 하지만 그에겐 학교를 쥐고있는 아빠가 있기에 아명보담은 여건이 좋다. 이럴 때 이 학교에 새 미술 선생님이 부임하게되고 그는 군사적이고 위압적인 학교분위기를 읽어낸다. 학생들은 그러기에 '마음대로 그리라'는 곽선생의 말에 어쩔줄몰라하고 사실에 치중한 그림만 그린다. 그러나  고아명을 달랐다. 자연에서 보고 듣고 실생활에서 채득한 것들을 그는 얽매임없이 그만의 상상력으로 소화해낼 줄 알았다. 돼지를 아주 뚱뚱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묻는 곽선생의 질문에 '아빠가 비싼 값에 돼지를 팔 수 있기를 바랬다'는 거나, 더위 속에 일하는 아빠를 위해 태양을 남색으로 처리한 그림 등이 아명의 그림세계다. <로빙화>는 이러한 두 대립속에 자유로운 창작정신을 압제하는 학교의 제도권과 뇌물수수의 대만정치를 은유하고 있다. 선생들이 고쳐 쓴 원고로 행해지는 교내웅변대회, '마음대로' '아무거나'가 없는 군사적인 교육체계, 이 모든 것들은 임지홍처럼 하늘은 꼭 파랗게 그려야한다는 인위적이고 틀에 박힌 아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커서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애들 때는 그저 아명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같은 놀이나 공차기 같은 "놀이"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어린애들만을 봐도 어떠한가. 서너군데의 학원에 TV, 갇혀있는 나만의 공간. 그들은 틀 안에서만 기생한다. 그들의 범주엔 익명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세대도 포함될 것이다. 모작, 모방. 보이지 않는 틀속에 자기를 끼워맞추려 두 눈을 충혈시키는 바로 너.

<로빙화>는 이 '개성없음'의 사회에 대한 경고요, 그림에 대한 노스탈지아다. 비록 고아명은 플란다스의 소년처럼 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에서 죽어갔지만 부족한 크레파스와 종이에 남긴 아름다운 삶의 교훈이 있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로빙화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1996.7.31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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